글쓰기 실마리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들, 수상을 거부하다!

김욱작가 2021. 1. 8. 11:59

1977년 제정한 이상문학상은 소설가라면 누구나 받기를 원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최고의 문학상이다. 물론 중단편 소설에 한정되기는 하지만.

2020년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자는 김금희 작가로 선정되었지만, 김금희 작가는 저작권 양도 요구에 크게 반발하며 수상을 거부했다.

 

2020년 벽두부터 이상문학상 수상자 중 3명이 상의 수상을 거부해 큰 이슈가 되었다. 이상문학상은 요절한 천재 소설가 이상(李箱)을 기리기 위해 만든 상으로 매년 대상작 한 편과 우수작 일곱 편 남짓을 선정해 시상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다.

나도 어릴 적부터 다른 문학상 작품집은 읽어보지 않았어도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읽어왔다. 한마디로 먹히는 작품집이다. 대한민국의 노벨문학상이라고 보면 된다. 지금껏 수상한 사람의 면면을 보면 실로 한국을 대표할만한 작가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런데 왜 그토록 영광스러워야 할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들이 상을 거부했을까?

가장 핵심이 된 이슈는 저작권이다. 이상문학상 수상자가 되면 문학사상사와 출판 계약을 한다. 이 계약서 조항을 보면 3년 간 수상작에 대한 권리를 출판사에서 갖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여기에는 돈이 걸려 있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유명한 작품집이며, 기존에 출간된 책들도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팔리고 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이상문학상의 권위를 유지하고 상금으로 나가는 돈을 책 판매를 통해 메꾸려고 한다. 이런 이유로 3년간 독점적 사용권 계약을 하고자 한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책을 팔아야 하는데 작가들이 이상문학상 수상작 모음이라던가 수상작을 별도의 단행본으로 출간하면 문제가 된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의 판매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3년간 독점권을 출판사에서 보유한다는 내용으로 수상 대상 작가에게 계약서를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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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현대문학상이나 동인문학상 등을 운영하는 다른 출판사들은 이런 3년 독점계약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책들은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처럼 많이 팔리지 않으므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문학상은 이야기가 다르다. 말이 3년이지 3년간 독점권을 갖는다는 건 한마디로 ‘매절 계약’과 다를 바 없다는 의견이 많다.

© thecreative_exchange, 출처 Unsplash

글의 약빨이라는 것도 출간되고 3년 이면 거의 희석된다. 그래서 출판사도 계약 시 보통 5년 계약을 하고 도서 반응이 좋지 않으면 거기서 멈춘다. 더 이상 책을 인쇄하지도 유통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팔리지 않는 책을 계속 유통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문학과 사상사의 이런 3년 독점권에 이의를 제기했다. 자세히 조항을 살펴보면 크게 2가지다. 3년간 해당 당선작의 독점권을 문학과 사상사에서 보유하며, 단행본을 내더라도 그 작품을 제목으로 하거나 전면에 내세우지 못한다는 거다. 사실 작가 입장에서 보면 훌륭한 작품을 팔 수 있는 기회를 출판사에 완전히 빼앗기는 거나 마찬가지다.

얼마 전 내 직장동료의 딸도 이런 매절방식을 통해 원고를 팔았다. 3백만 원을 받고 원고를 출판사에 아예 넘겨버렸다. 매절 방식은 최근에는 많이 없어졌으나 아직도 매절 방식을 이용하는 출판사가 있다. 이상문학상도 결국 판권을 3년간 출판사로 넘기고 그 대가로 상금을 받는, 한마디로 매절 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런 점에서 작가들이 이의를 제기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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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출판사 입장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출판 업계의 고질적인 한파인 불황도 인정해줘야 한다. 상을 유지하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상금이야 인세에서 어떻게든 해결한다고 치지만, 심사위원 평가수당 등 별도로 소요되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따라서 소요비용을 무한정 지출할 수도 없는 일이다. 수익사업을 통해 보전을 받아야 한다. 출판사도 기업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해야만 하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따라서 수익사업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여기서 작가와 출판사와의 입장의 차이가 발생한다.

 

© dariuszsankowski, 출처 Unsplash

공모전 형식이었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상문학상이 공모전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일정 기간 내에 발표된 소설을 대상으로 한다. 공모작은 이미 출판 조건을 공고 당시 제시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 가령 수림문학상은 연합뉴스, 수림문화재단에서 공동 시행하는데, 저작권은 저자, 연합뉴스, 수림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출판 독점권은 연합뉴스에서 독점하는 체계다. 저작권 관계가 미리 공지 된다. 그러니 전혀 문제될 여지가 없다.

과거에는 작가의 저작권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으나 저작권의 개념이 도입되고 세분화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아주 중요해졌다. 내 창작물을 타인이 무단으로 사용할 경우 사용금지 청구,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해당 사실을 언론에 공표하여 이슈화할 수도 있다. 언론 기사를 보면 유명한 3명의 작가가 수상을 거부한다고 한다. 이런 매절 계약의 희생양이 되지 않겠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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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imono, 출처 Pixabay

나는 대학원에서 저작권을 전공했다. 그래서 저작권에 대해 아주 관심이 많다. 특허법무대학원에 진학해 특허나 상표가 아닌 저작권을 전공한 이유는 저작권이 범위도 상당히 넓고 아직 미개척 분야가 많기 때문이다. 저작권은 저작물에 대한 저작자의 권리다. 저작자는 열심히 노력해 창작물을 만들어내고 이런 창작물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다. 우리가 열심히 쓴 책도 역시 저작물의 대상이다. 따라서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

저작권 전공자 입장에서 아무래도 저작자를 우선하여 보호하자는 주의이므로, 문학사상사가 제안한 내용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요구이기에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편을 들고 싶다. 하지만 출판사 입장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소위 히트작을 내지 않으면 너나 할 것 없이 나가떨어지는 판국에 출판사라고 어찌 돈을 고려하지 않고 순수한 수상의 목적으로 상을 줄 수 있을까? 기업이나 국가의 후원이 있지 않는 한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일도양단 식으로 잘잘못을 가리자는 게 아니다. 이런 게 있다는 걸 알자. 저작권 계약서 조항을 꼼꼼히 읽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사족으로 ‘장 폴 샤르트르’가 ‘말’이라는 소설로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하며 남긴 말을 여기서 재차 강조하고 싶다.

 

‘상의 취지에 찬동할 수 없다. 노벨문학상은 서양에 편중된 상이며, 어느 누구도 작품의 우월성을 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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