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리뷰
이번에 리뷰할 책은 나카야마 시치리의 <은수의 레퀴엠>이다.
그의 2016년 작으로 역시 이연승이 번역했다.
우리나라 출판은 2018년이니 2년 후에 출판된 셈이다.
번역기간까지 고려하면 바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챕터는 보통 5개로 가져가는 시치리의 다른 소설과 다르게
4개로 구성된다.
양 배분도 제각각이다. 이야기도 하나로 연결되며 각자 움직이지 않는다.
시치리 답지 않은 구성이다.
줄거리는 옛 스승의 살인죄 구명을 위해 노력하는 미코시바 변호사의 이야기다.
구조는 의외로 단순하다.
요양원에서의 학대를 견디다 못한 이나미가 요양보호사를 살해하고,
이를 구명하기 위한 미코시바의 분투기다.
이 소설의 2가지 특징은
첫째, 세월호 사건을 오마쥬 한 것이고,
둘째, 긴급피난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하루에 한 번 왕복하는 한국적 블루오션호는 세월호다.
분명히 시치리는 세월호를 염두에두고 이 소설을 썼다.
배가 가라앉은 이유도 세월호와 같다.
1. 급속 변침
2. 화물 체결 불량
3. 불법 개조로 인한 무게중심 상승
4. 선박평형수 부족
5. 과적
또한 일본의 노후한 선박을 한국으로 가져다가 개조했다, 는 점도 시치리의 의중을 적확하게 증명한다고 하겠다.
‘당황하지 마시고 안전한 선내에서 기다리라는 말’
‘구명보트와 구명조끼의 부족’
‘선장과 선원들의 집단 도주’
이것 역시 세월호와 다르지 않다.
긴급피난은 학부 시절 형법 수업시간에 배웠다.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구성요건 해당성
위법성
책임
이 그것이다.
구성요건에 해당해야 하고, 위법성 조각사유가 없어야 하며, 책임능력이 있어야 범죄가 성립한다. 셋 중 하나만 없어도 범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위법성 조각사유는 크게 5가지다.
1. 정당방위
2. 긴급피난
3. 자력구제
4. 피해자의 승낙
5. 정당행위
여기에 해당하면 위법성이 없다고 보아,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 중에서 ‘긴급피난’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자신 또는 타인의 생명, 신체, 자유 또는 재산에 대하여 현재의 위기상태를 회피하기 위해
저지른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형법 상의 위법성 조각사유 중 하나다.
도치노는 세월호에서 한 여인의 구명조끼를 빼앗고, 자신을 살아남았다.
그리고 법원에서 긴급피난으로 인정돼 무죄를 선고받는다.
이나미는 요양보호사 도치노의 고토에 대한 폭력을 막고자
꽃병으로 도치노를 때려 죽인다.
그리고 미코시바 변호사는 이나미의 무죄를 주장하며, 긴급피난을 주장한다.
도치노는 자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였고,
이나미는 타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양자는 서로 다르다.
이 소설에서 가슴이 아팠던 장면은 ‘이나미’가 자신이 유죄라고 부르짖는 장면이다.
미코시바 변호사는 이나미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정작 피의자인 이나미는 자신이 유죄라고 주장한다. 긴급피난을 떠나 자신은 사람을 죽였으며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기를 원한다.
나는 이나미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죽어야 할 사람을 죽이고, 그걸 피해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도 도치노와 똑같은 사람이 되기는 싫다는 그 마음.
미코시바는 아니라고 한다. 이나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그런 것이라고. 제발 말하지 말라고. 자신이 유죄라는 사실을.
나는 이 장면에서 도대체 ‘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의란 무엇이기에.
또 하나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에게 학대를 당하면서도 그것을 이야기할 수 없는 노인들의 그 마음.
요양원이 문제가 되어 없어지게라도 되면 갈 곳이 없는 노인들의 그 마음 말이다.
시치리는 이런 문제까지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그린다.
나머지 하나는 검사다. 과잉피난을 주장하면서 끝까지 이나미에게 유죄를 주려 한다. 도대체 검사란 죄를 뒤집어씌우는 기계인가? 묻지마 기소 시스템의 희생양인가.
일단 기소하고 보고, 아니면 말고 식이다. 1심에서 이겨도 소용없다. 어차피 검사는 항소하니까. 실체적 진실보다는 피해자 보호를 우선하는 변호사의 반대 입장에 있는 그들의 입장도 못 헤아릴바는 아니다. 하지만 중간이라고 생각해도 한 쪽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그들,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는 사법체계.
딱히 반전이랄 것은 요양원 피해자들끼리 관계 정도지만
(오가사와라 부인이 도치노가 죽였던 세월호의 그 여인의 어머니)
내가 생각하는 반전을 굳이 뽑자면, 형량이다.
무죄가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징역 6년이다.
무죄가 안 나왔다.
이게 반전이라면 반전일게다.
미코시바의 짜릿한 승리로 끝날 것을 예상했던 독자들은, (나를 포함하여) 깨끗하게 시치리에게 당했다.
반전의 제왕이라는 시치의 반전 형태는 대략 다음과 같다.
범인이 이 사람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A가 B와 과거에 무슨 관계였다. 그래서 C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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