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실마리

베껴쓰기, 반드시 해야 하나?

김욱작가 2020. 3. 1. 18:26

글쓰기 초기에는 잘 쓴 글을 베껴쓰기하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실력이 어느 정도 있는 분들이야 베껴쓰기의 효용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초심자는 어떻게 쓸지 자체가 고민이므로 베껴쓰기가 분명 필요하다. 나는 2000년대 초반 강준만 교수의 글을 흉내냈던 경험이 있다. 당시 대학 자유게시판에 내 생각을 정리해서 올리곤 했다. 얼마나 강준만 교수 흉내를 냈던지, 누가 댓글에 강준 만 흉내 좀 그만 내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베끼다는 말 자체가 갖는 거부감으로 차라리 따라하기, 흉내내기, 모방하기란 단어가 더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베껴쓰기란 단어를 써 왔으므로 나도 그대로 쓰기로 한다.


베껴쓰기는 과거부터 있어 온 단어지만 글쓰기에 본격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한 분은 송숙희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이제껏 수없이 많은 글쓰기 책을 써왔다. 대부분의 책에서 주장하는 핵심은 베껴쓰기. <최고의 글쓰기 연습법 베껴쓰기>, <당신의 책을 가져라>, <직장인 글쓰기의 모든 것>, <따라 쓰기의 기적>, <돈이 되는 글쓰기의 모든 것> 등 송작가의 책에는 하나같이 베껴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그녀는 신문칼럼을 꾸준히 베껴쓰라고 강조한다. 매일 1,000자 내외의 신문칼럼을 베껴쓰면 6개월 후 칼럼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는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나는 베껴쓰기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베껴쓰기가 확실히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베끼기만 하기 보다는 분석하고 생각하면서 베껴야 한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기보다는 비판적인 시각을 함께 가지면서 나같으면 이렇게 쓰겠는데?’하는 주관적인 태도도 함께 하는 게 좋다.


이남훈 작가는 그의 책 <필력>에서 베껴쓰기는 초보 작가가 주어와 술어 관계를 모를 때, 어느 작가의 문체를 배우고 싶을 때는 일견 타당하지만 그 외에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잘 쓴 글의 문단을 분석하고 요약하는 습관을 가지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송숙희 작가의 베껴쓰기와 이남훈 작가의 주장이 결국 따지고 보면 비슷하다. 구분의 의미가 없다. 베껴쓰기를 하면서도 생각하고 분석하고 요약한다. 마찬가지다.


얼마 전 한 글쓰기 강연에서 이국종 교수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접했다.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란 책이 출간되고 관련 업계에서 누가 대신 써주었다라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는 거다. 작가가 아닌 의사가 쓴 글이 작가 수준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국종 교수가 쓴 글로 판명이 났다. 이국종 교수는 김훈 작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의 글을 필사하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이걸 꾸준히 하면서 김훈 작가와 같은 문체를 가지게 된 것이다. 실제 이국종 작가는 김훈의 <칼의 노래>를 하도 읽어서 거의 외울 정도라고 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짙은 감동을 오랜만에 느꼈다. ‘로 시작되는 1인칭 시점으로 바라보는 임진왜란의 현장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조국과 국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주었다. 나는 최근에 이 책을 다시 읽고 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란 말처럼 무엇인가를 따라하다보면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 소위 안전빵이라는 거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이 어디 거기서 끝나던가? 거기에 무엇이라고 하나 더 해 나만의 것이라는 티를 내고 싶어한다. 인간의 본능이다. 그래서 무엇인가가 첨가되고 가미된다. 이러면서 더 개선되고 개량된 무엇인가가 탄생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좋은 건 가져오고, 안 좋은 건 가져오지 않는다. 아쉬운 점은 보완해서 반영한다. 이렇게 좋은 글이 탄생한다.

나는 베껴쓰기를 좋아하지 않아 특정 원고를 베껴쓰는 건 하지 않는다. 다만 하지만 짧은 칼럼을 읽고 요약하는 연습은 나름 꾸준히 했다. 글쓰기 실력을 향상하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니 간략하게 설명한다.

첫째는 예측이다. 원고나 기사, 칼럼의 제목을 보고 그 내용을 대략적으로 유추해본다. 제목만 보고 유추하기에 내 멋대로 유추해본다. 가능하다면 하나가 아닌 여러 방식으로 유추하면 더욱 좋다. 유추한 내용가 실제 내용이 흡사하다면 아주 기분이 좋아진다.

둘째는 정독이다. 칼럼이나 원고를 유심해 읽어본다. 읽는 건 두 번 하기를 권한다. 첫 번째는 글의 전개방식을 큰 틀에서 확인한다. 그리고 난 후 두 번째 읽을 때 정독을 한다. 이미 한 번 큰 틀에서 읽었으므로 정독이 잘 된다.

세 번째는 쓰기다. 읽은 내용을 덮고 백지에 최대한 기억해서 써 본다. 방금 읽은 글인데 잘 써지지 않는다. 하지만 두 번 읽은 것을 상기해서 구조를 잡고 세부적으로 최대한 기억해서 써 내려간다. 자주 하다보면 비슷해진다. 처음에는 뚱딴지 같은 글을 썼다고 자조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넷째는 비교다. 실제 칼럼과 내가 쓴 원고를 비교해본다. 무엇이 일치하고 무엇이 다른지 확인한다. 보통 내가 쓴 문장은 어설프고 칼럼은 잘 쓴 글이므로 무엇이 부족했나 확연하게 구분된다. 그 간극이 내가 극복해야 할 산이다.

다섯째는 요약이다. 실제 칼럼을 200자 내외로 요약해 보는 거다. 200자 글쓰기는 트위터를 통해 유명해졌다. 중언부언하지 않고 짧은 글자 범위 내에서 하고자 하는 말을 모두 표현하는 방식이다. 실제 요약을 통해 글쓰기 실력 뿐만 아니라 핵심을 정리하는 실력까지 늘게 된다.

산문은 베껴쓰기, 운문은 암송이란 말이 있다. 산문 실력은 꾸준한 베껴쓰기를 통해 향상되며, 시를 쓰기 위해서는 많은 시를 외워야 한다는 의미다. 암송도 결국 베껴쓰기의 큰 범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시건 에세이건 소설이건 간에 베껴쓰기는 아주 중요한 글쓰기 향상의 비결이다. 영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찰스 디킨스도 필경사 출신이다. 필경사라 함은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 책을 필사로 베꼈던 직업을 말한다. 디킨스 역시 이렇게 베끼면서 소설가가 되었다.




- <책쓰기가 만만해지는 과학자 책쓰기> 中 (김욱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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