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사의 예찬/월탄 박종화

김욱작가 2020. 3. 18. 11:08

보라!

때 아니라, 지금은 그때 아니다.

그러나 보라!

살과 혼

화려한 오색의 빛으로 얽어서 짜 놓은

훈향(薰香)내 높은

환상의 꿈터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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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옷을 해골 위에 걸고

말없이 주토(朱土)빛 흙을 밟는 무리를 보라.

이곳에 생명이 있나니

이곳에 참이 있나니

장엄한 칠흑(漆黑)의 하늘, 경건한 주토의 거리

해골! 무언(無言)!

번쩍거리는 진리는 이곳에 있지 아니하냐.

, 그렇다 영겁(永劫)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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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의 무리야!

모든 새로운 살림을

이 세상 위에 세우려는 사람의 무리야!

부르짖어라, 그대들의

얇으나 강한 성대가

찢어져 해이(解弛)될 때까지 부르짖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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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분에 뛰는 빨간 염통이 터져

아름다운 피를 뿜고 넘어질 때까지

힘껏 성내어 보아라

그러나 얻을 수 없나니,

그것은 흐트러진 만화경(萬華鏡) 조각

아지 못할 한때의 꿈자리이다.

마른 나뭇가지에

고웁게 물들인 종이로 꽃을 만들어

가지마다 걸고

봄이라 노래하고 춤추고 웃으나

바람 부는 그 밤이 다시 오면은

눈물 나는 그 날이 다시 오면은

허무한 그 밤의 시름 또 어찌하랴?

얻을 수 없나니, 참을 얻을 수 없나니

분 먹인 얇다란 종이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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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추예(醜穢)를 가리운 이 시절에

진리의 빛을 볼 수 없나니

, 돌아가자.

살과 혼

훈향내 높은 환상의 꿈터를 넘어서

거룩한 해골의 무리

말없이 걷는

칠흑의 하늘, 주토의 거리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