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실마리
존 케이지의 4분 33초, 그리고 글쓰기
김욱작가
2020. 3. 18. 11:05
존 케이지의 '4분 33초'란 곡은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놀랍게도 음표가 하나도 없다.
단지
'TACET" (조용히)만 적혀 있다.
그럼 음악은 어디로 갔을까?
관객이 만든다. 기침도 하고, 잡담도 하고, 팸프릿을 넘기고, 의자를 삐거대고
이런 소리가 모여 곡을 만든다. 매번 다른 곡이다.
존은 이 아이디어를 동료인 화가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그림에도 차용했다고 한다.
로버트는 한 전시회에서 빈 캔버스를 전시했다.
그림 역시 독자가 만드는 거다. 그 앞을 지나다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조명에 반사되어 그림을 그린다.
이 두 케이스를 보면
글쓰기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
나도 백지의 글을 써볼까? 백지를 보고 생각하는 독자가 그 글을 채워나가는 거다.
한대 맞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무모한(?) 작업에는 비난이 따른다.
실험정신은 평론가들의 매맞음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
음악은 반드시 소리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그림은 반드시 붓터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
이걸 탈피한 위대한 행위라고 감히 부르짖고 싶다.
모차르트는 말했다.
음악은 음표가 아니라 음표와 음표사이의 침묵이라고...
글의 멋은 글 자체가 아니라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에 펼쳐진 작가의 지극한 배려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