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실마리

밋밋하게 쓰지 말고 강하게 쓰자

김욱작가 2020. 3. 17. 14:18

군대에 있을 때 지겹도록 들은 말이 있다. 중간만 하라는 거다. 이 말이 군대에서만 통용되는 말인줄로만 알았다. 사회에 나와보니 그게 아니었다. 사회에서도 역시 통했다. 중간만 하자. 무난하게 가자. 튀면 죽는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처럼, 그저 두리뭉실하게 무난하게 가는 게 오래 사는 길이다. 회사에서도 상사가 시키는 대로 정확히 업무를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톡톡 튀는 아이디어맨은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분들은 조직생활보다는 창업을 해야 한다. 언젠가 한 강연에서 작가는 조직생활과 맞지 않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작가는 남과 다른 독특한 시각과 관점을 가지고 있어서 조직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이 말을 듣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작가와 직장을 병행하고 있지만 작가적 사고가 직장생활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진작부터 생각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작가적 관점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일반인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작가가 되긴 힘들다. 작가는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차별화된 시각이 있어야 하고 그걸 글로 표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평민과 같은 생각을 한다면 그들이 생각하고 표현하는 방식대로 표현하게 되고 그건 누구나 쓸 수 있는 소위 사망선고된 글밖에 양산해 내지 못하기 때문일게다. 작가는 세상을 자기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남들이 바라보지 못하는 심연 깊숙한 곳까지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남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건드리게 되고 비로서 제대로 된 글이 나올 수 있다. 남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그런 글 말이다.


간혹 글을 읽다보면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하는 글을 자주 보게 된다. 어느 입장을 택하고 그에 대한 논거를 적어야 살아있는 글이 됨에도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소위 안전빵이라는 글을 적는거다. 이런 글은 읽어도 재미가 없고 감동도 없고 공감도 없다. 그저 밋밋하다. 무난하다. 읽기에 거리낌은 없으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글은 그야말로 죽은 글이다.

우리가 책을 쓸 때 항상 지겹도록 듣는 말이 예상독자를 최대한 한정하라는 말이다. 나도 처음엔 이 말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예상독자가 많으면 그만큼 책을 읽을 독자가 많아져서 좋은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게 되자 이해가 됐다. 독자를 한정하면 그 한정된 독자에게 할 말을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고, 글 자체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구체적인 문장이 되기 때문이다. 예상독자를 좁히라는 말처럼 입장도 어느 한 편에 확실히 서야 한다. 한 편의 입장이 되면 그 논거를 구성할 때 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식의 표현은 구체적이지 못하고 힘이 없다. 어느 한 편에 서서 사자후를 내지르고 그것에 대한 논거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제시함으로 글은 힘을 얻게 된다. 따라서 두리뭉술한 글을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살아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어느 한 쪽의 입장에 서야 한다. 두리뭉술하게 써서는 안 된다.


나도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위해 참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글쓰기와 책 쓰기 관련 책을 시중에 출간된 건 거의 다 읽어본 것 같다. 그래서 글을 쓸 때마다 그 기억의 파편이 나를 짓누른다. 하지만 이 역시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과감하게 내지른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교훈이 글은 독자가 예상한 수준을 뛰어 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독자가 예측이 충분히 가능한 상투적이고 진부한 것, 일반론으로는 독자의 관심을 끌기 힘들다. 그러기 위해서는 콘셉트도 참신해야 하지만 과감함으로 때로는 질러대며 독자를 신세계로 안내해야 한다.

우리 인간의 눈은 4가지가 있다. 육안, 지안, 심안, 영안이다. 육안은 사물을 관찰하는 단계다. 그냥 바라보는 거다. 지안은 사물을 보고 어떤 것을 연상하는 단계를 말한다. 입력된 지식이 많을수록 많은 게 보이기 마련이다. 심안은 마음으로 보는 단계다. 보고 가슴으로 느끼는 단계다. 마지막으로 영안은 저 넘어를 보는 거다. 일반인은 도저히 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작가는 이 영안이 발달되어 있다. 영안을 제대로 활용해야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 이런 영안을 가지면 아무나 쓸 수 없는 제대로 된 글이 나오기 시작한다. 우린 어쩌면 영안을 갖기 위해 투쟁하는 외로운 방랑자일지도 모른다.

힘이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흔히 두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하나는 대립하는 두 관점을 소개한 후 어느 한 편에 서는 방식이다. 가령, 사형제 폐지와 관련한 논쟁 시 찬성의 논거와 반대의 논거를 설시한 후 어느 한편의 손을 들어주는 방식이다. 어느 한 편에 설 때 그 이유에 대해 적확하게 설명해야 하고 반대 논거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야 한다. 둘째는 여러 대안을 있는 그대로 나열한 후 그 중 어느 하나가 자기 의견이라고 맺는 방식이다. 가령 우리 나라의 사교육의 병폐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치자. 사교육을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걸 모두 나열한 후 그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 이유를 제시하는 방법이다.


힘 있고 재밌는 글은 대칭 구도를 만들고 양자가 제대로 싸우게 해야 한다. 그래야 재밌다. 서로서로 양보하고 좋은 관계면 드라마도 망한다. 드라마를 보면 갈등, 대립, 번목, 치정, 삼각관계, 불륜, 살인, 사기 등 온갖 인간이 지양해야 할 이야기 투성이다. 이래야 재밌다. 물론 글을 재밌으리고 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독자는 이런 글에 열광한다. 양자의 의견이 대립하고 부딪칠 때 팽팽한 긴장감이 생기고 거기서 제대로 된 글이 나온다. 밋밋한 글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우리 사회가 보수와 진보, 명분과 실리, 야당과 여당, 원칙과 예외, 이론과 실제가 끊임없이 대립하듯 우리 글도 입장의 대립을 통해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가야 글도 살고 나도 산다.


- <책쓰기가 만만해지는 과학자 책쓰기> 中에서 - (김욱 저)